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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노란 꽃길을 따라 산릉을 걷고, 잠자리 군무의 환영을 받으며 여름꽃들이 화사한 산길을 따라 걷는 사이 다시 구름이 밀려들더니 따가운 여름 햇살을 가려준다. 그러다 조망점이다 싶은 지점에 도착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구름이 걷히면서 파란 산야가 드러난다. 허벅지와 팔이 살짝살짝 긁히는 데도 흥겹기만 하다. 덕유산 능선길이 이렇게 좁고 숲이 우거져 있다는 것은 분명 자연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반가울 수밖에 없다.
흥겨운 마음이 흥겨운 풍광을 보여준다. 동엽령에서 잠시 쉬는 사이 또 다시 구름이 걷히더니 중봉(1594.4m)이 솟구치고, 그 뒤로 덕유산 정상 향적봉(1614m)이 고개를 슬쩍 내민다. 이제 중봉까지는 내리 오르막. 거칠 게 없다. 백암봉 바위들은 반짝이며, 어서 오라 와락 끌어안는다. 중봉은 역시 이름날 만한 여름꽃 군락지다. 안개가 자욱한데도 푸른 사면이 노란 원추리꽃으로 뒤덮이고, 여름꽃들이 원추리꽃밭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준다. 게다가 구름안개는 꽃밭을 더욱 신비스럽게 꾸며주고 있었다.
향적봉 정상에 올라서자 그 너머로 스키장 곤돌라 터미널이 보인다. 덕유는 산 한쪽이 뭉개지든 말든 개의치 않고 대자연의 신비를 오늘도 잃지 않고 있다. 산밑에서는 구름이 밀려 올라오고 향적봉은 이를 없애느라 부지런히 팔을 휘젓는다. 산은 늘 그대로인데 산을 접하는 우리의 자세는 늘 변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상 바위에 올라 뒤돌아섰다. 남덕유는커녕 무룡산도 보이지 않는다. 향적봉에 쉽게 올라 남덕유마저 탐하려는 이들에게 모습을 보여주기를 꺼리는 것일까. 아니었다. 곧 구름이 벗겨지면서 무룡이 다시 한번 춤판을 벌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삿갓봉이, 남덕유가 서서히 무릎을 펴고 일어나 팔을 훠이훠이 휘젓기 시작했다. 덕유, 역시 넉넉하고, 기운이, 흥이 넘치는 산이었다.
● 산행 가이드
'중봉~향적봉'은 야생화 천국
덕유산(德裕山·1614m)은 계절마다 다양한 풍광을 보여주는 국립공원이다. 여름 역시 빠지지 않는 계절이다. 산릉을 수놓는 야생화는 천상화원이란 수식어 외에는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안개가 연출하는 풍광은 대자연의 신비 그 자체다. 거기에 향적봉에서 남덕유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과, 동쪽으로 산릉이 겹을 이루고 그 끝에 곧추선 합천 가야산 일원의 조망은 산사진 작가들이 국내 최고의 균형미로 꼽을 정도다.
여름철 덕유산 산행은 야생화 군락지를 목적지 삼아 코스를 잡도록 한다. 야생화 군락지는 중봉, 무룡산, 서봉 일원. 중봉은 향적봉과 잇는 산행이 제격이다. 국립공원 관리소가 있는 삼공리에서 소와 담 그리고 폭포가 연이어지는 구천동계곡을 거슬러 백련사까지 다가선 다음 향적봉을 거쳐 중봉으로 올라서는 게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하산은 등로를 되짚든지 또는 오수자굴을 거쳐 백련사 들머리로 내려선다. 삼공리 기점 향적봉 왕복산행은 6~7시간, 오수자굴 코스를 끼워넣으면 1시간쯤 더 걸린다. 체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무주리조트(063-322-9000)의 설천봉 곤돌라를 타고 오르도록 한다(왕복 1만원, 편도 6000원). 곤돌라 종점~향적봉 10~20분, 향적봉~중봉 30분 거리다.
서봉 일원은 향적봉~중봉 코스에 비해 찾는 이가 적어 더욱 호젓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으나 교통이 불편하다. 영각사 매표소을 출발해 남덕유와 서봉을 거쳐 육십령 방향(남쪽)으로 향하다 첫번째 갈림목에서 왼쪽 길을 따라 덕유교육원로 내려선다(5시간). 육십령까지 걸으면 1시간30분쯤 더 걸린다.
종주산행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진행할 경우, 영각사 기점이든 육십령 기점으로 삼든 삿갓재대피소에서 하룻밤 묵는 일정으로 짠다. 곤돌라를 타고 향적봉대피소에서 하룻밤 묵은 다음 이튿날 아침 일찍 출발하면 영각사까지 하루에 갈 수 있다. 준족들은 육십령까지도 가능하다.
덕유산 국립공원 전화 : 본소 (063)322-3174~5, 삼공매표소 (063)322-3473, 안성매표소 (063)323-0577, 남덕유분소 (055)943-3174, 영각매표소 (055)962-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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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동부터미널 1일 9회·042-624-4451~3), 전주(공용터미널 1일 3회·063-270-1700)에서 구천동행 직행버스가 다닌다. 무주행은 서울(남부터미널 1일 5회·02-521-8550), 광주(종합터미널 1일 8회·062-360-8114), 대구(북부 1일 3회·053-357-1851~3) 청주(여객터미널 1일 2회·043-234-6543) 등지에서 있다. 무주 공용터미널(063-322-2245)에서 삼공리행은 수시 운행. 육십령은 전주(공용버스터미널·063-270-1700)~대구(서부정류장·053-656-2824~5) 간 노선버스 이용. 영각사행은 함양시내버스터미널(055-963-3745)에서 다닌다. 서상정류소(055-963-0303) 경유.
● 숙박
덕유산국립공원 산중 숙소는 삿갓재 대피소(011-423-1452)와 향적봉 대피소(063-322-1614)가 있다. 육십령 고갯마루 육십령휴게소(055-963-0610)는 매점과 식당, 민박업을 함께 한다. 삼공리 덕유대야영장은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 맛집
왕돌회관(063-322-0977,9603)은 무주리조트와 삼공리 사이 도로변에 있다. 흑돼지 삼겹살 참나무 구이, 산채정식, 쏘가리매운탕 등 메뉴가 다양하다. 원조할매보쌈(063-322-2188)은 대도시 유명 보쌈집의 맛을 능가한다는 평에 듣는 음식점. 삼공리 관광단지 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