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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서파종주

청산거사 2008. 6. 22. 20:53

3일째:서파산문-계단-5호경계비-청석봉-백운봉-녹명봉-차일봉-옥벽폭포-소천지 (이도백하 숙박)

아침5시에서 기상하여 숙소마당에 나가보니 비가 한방울씩 내려는데 오늘은 서파종주날.....아침을 먹고 6시30분에 버스를 타고 서파산문으로 출발했다.   서파산문은 7시30분에 출입할수 있어 우리일행은 7시20분에 도착하였다. 비는 점점 이슬비에서 가량비로 내리니 걱정이 된다

 

 

 

 백두산 입구에있는 화장실

 

 우리는 비옷을 입고 백두산으로 출발하였다.

 

 

 800계단표시인데 1200계단이란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석인 5호경계비

 백두산 천지

 

 

 

 

 

 

 

 청석봉가는길에 핀 백두산 야생화

 

 

 

 청석봉에 핀 야생화

 청석봉에서.....점점빗줄기는 거세고 바람도세차다.

 

 

 

 

 백운봉(장백산)

07:30분 서파산문 입구에 모였다. 여기서 서파란 서쪽 언덕을 의미한다. 벌써 비가 조금씩 내린다. 아침에 본 TV일기 예보가 마음에 걸린다.  장마 비구름이 한반도를 덮고 있었다.    20분정도 입장을 기다리는데 장뇌삼을 판매하는 젊은이가 와서 걸쭉한 입담으로 사기를 권한다. 장뇌삼 15년산이 한 뿌리 2만원, 6년산은 2뿌리에 1만원이란다.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출발하기 직전에 비닐 우의를 사라고 한다. 우리는 그냥 버스에 올랐다.

 

07:50분, 버스가 출발하여 약45분 정도를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어제 갔었던 제자하를 지나쳐서 훨씬 더 올라간다. 나중에 우리가 올라왔던 산길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  산록을 꼬불꼬불 뚫린 도로도 과연 장관이었다.  돈 가치가 다르다보니 흥정하며 깎는 것을 재미삼아 몇 사람이 사주었다.  1만원에 4뿌리를 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것은 인삼이 아니라 거의 도라지 수준이었다고 한다. 우리 가이드도 나중에 장뇌삼이 아니라고 했다


08:35분, 산 위의 주차장에 내리니 비바람이 몰아친다. 화장실을 다녀와서 우의를 입고 준비를 하여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08:50). 산행 팀은 오직 우리 팀 하나뿐이다.  나는 시작부터 일행의 후미에 서게 되었다. 계단은 1200개라고 했다. 계단 옆으로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꽃이 피어 있지만, 그 분야에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특별한 느낌은 없이 그냥 걸었다. 꽃보다는 아직 계곡 깊은 곳에 덜 녹은 눈을 보고 과연 높고 큰 산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09:10분, 드디어 천지를 봤다. 천지는 면적 9.17㎢, 둘레 14.4km, 최대너비 3.6km, 평균 깊이 213.3m, 최대 깊이 384m, 수면 고도는 2,257m이다 라고 한다. 사실 나는 천지를 본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고 내가 천지에 온 목적을 천지를 보면서 기원도 드렸다.

지금까지 국내의 수많은 산을 올라봐지만 오늘처럼 환희를 느낄수 있는 산은  과연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


동료들은 저마다 카메라로 여기저기를 찍고 서로 찍어주기를 한다. 중국과의 경계를 나타내는 5호 경계비도 옆에 서있다. 나도  도착하여 몇 장을 찍다보니 먼저 온 사람들은 벌써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관광차 천지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간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서파 산등성이를 타고 트래킹을 해야한다.  이때 까지만 해도 우리는 예상치 못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험난한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현지 중국인 가이드 두 사람이 안내를 맡았다.  서울에서 온 우리원여행사 대표 노근태씨가 맨 후미를 섰다. 우리는 계획대로라면 마천우, 청석봉, 녹명봉을 거쳐서 소천지로 하산할 계획이다, 백운봉과 용문봉을 비켜서 갈 것이다. 일행은 줄지어 약간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날씨는 바람은 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갈수록 비바람은 거세진다. 우선 바람이 거세니 몸을 가눌 수 없고 모래바람이 얼굴에 부딪혀 따가울 정도다. 이러다가 돌에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몸이나 다친다면 어떻게 할까?   출발에 앞서서는 지도를 준비하고 도상으로 지명을 익히고 했었지만, 맨 후미는 아니지만 막상 일행에 뒤처지다보니 그런 것을 생각할 틈도 없다. 오직 따라 붙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10:30, 청석봉을 넘어와서 인원파악을 할겸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평소에 간식을 을 좋아하지 않던 나는 동생들과 핫초코를 먹는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각자 배낭에 들어있지만 이 상황이라면 먹지도 못할 것이다. 이미 바지가 젖어들어 빗물이 타고내려신발에 물이 들어가서 양말 속에  젖어 신발이  무거워 진 것이다.

 

11:45,  송강하을 건너 고산화원에 도착하여 잠시 쉬였다.  우리는 추위를 이기기 위해 독한 술을 한잔 권한다. 쪼끔 마셨다. 비바람은 계속 세차게 분다. 카메라가 비에 젖을까봐 윈도자켓 안에 넣고 밖에는 비옷으로 마무리하고 백운봉을 향해 산행은 계속되었다 .  너덜지대와 급경사를 올라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본격화 되었다. 아니 한가하게 사진을 찍을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오르막길은 참고 올랐다지만, 약간의 내리막 을 거친 후에 다시 오르막을 오르다가 선두가 멈추어 섰다. 길이 없단다.  한쪽면은 눈이 녹지않아 깊이를 알수 없어 갈수가 없고 할수 없이 백운봉을 넘어갈수 밖에 없는 사항  나는 일생을 잠시 쉬게하고 혼자 백운봉을 네발로 엉금엉금 올랐지만  천지쪽은 운무로 덮여있고 한쪽은 칼바위 능선이라 비바람이 너무 세차게 불러 도처히 갈수 없어 현지가이드에게 백코스 하자고 하니. 조금 내려와서 눈이 없는 옆길로 비켜 가잔다.  다시 출발해서 걷는다. 백운봉을 우회하여 쉬면서 인원파악하니 저체온증 환자가 3~4명 발생하여 식사보다는 빨리 이동을 해야 한다고 하여 안개는 온 사방을 휘몰고, 바람의 방향은 전후좌우 제 맘대로 변한다. 오른 쪽은 아마 천지 낭떠러지인가 보다.  바람이 너무너무 세차게 몰아친다. 나는 가이드와 팔장을 끼고 군대에서 각개전투식으로 2~3시간을 이동하였다. . 고개를 들 수 없고. 모래바람인지, 굵은 빗방울인지 얼굴에 부딪히고 무척 따갑다. 바람의 방향도 수시로 바뀐다. 사방은 안개 속에 앞 사람은 보이지 않고 뒤집어 쓴 우의모자가 바람에 떨리면서 귓가에 굉음을 낸다. 옆에서 뭐라고 한들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는 상황이다. 아!, 왜 이다지도 세찬 바람인가, 그야말로 백두산의 외침이다. 울음이다. 울부짖음이다. 꾸짖음이다. 그래, 산이 나를 꾸짖는 것인가, 그동안 나태한 생활에 대한 질책인가……. 혼자서 머리를 숙인 채 생각해 본다. 하늘이시여! 내 진정 앞으로 진실 된 마음으로 살아가겠나이다. 부디 비바람을 거두어 주소서, 거두어 주소서…….

 

상등성이 무렵에서 안개 속에 앞선 사람이 방향을 오른쪽으로 급선회한다  용문봉인가보다.
앞사람만 보고 가다보니 뒤에오는 일행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마침 산허리를 비슷듬이 내려가서 정신을 차려 뒤를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아 앞에가는 일생에게 안전지대에서 기다리게 하고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니 소기획이 혼자와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였고 소 기획도 저체온으로 고생을 하여 먼저 내려보내고  기다리는데  o형님이 
 거슬러 다시 올라간다.   형수가 그 앞에 모인 사람 중에 있는 줄 알고 갔었는데 없더란다. 그래서 부인을 찾아 다시 안개 속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밑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19명……. 이제 나머지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혼자서 비바람과 싸우면서 올라 갈려고 하고 급도 났지만 형님과 함께 용문봉에 있는 일행을 찾으로 입이 불어 터지도록 호각을 불면서 2~30분을  올라 갔을때 위에서 두명이 내려 오니 얼마나 반가운가 그렇지만 나머지는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다니니 얼마나 걱정인가  몇해전 민주지산에 훈련하던 공수부대 대원들도 저체온증으로 죽는것을 보니 위에서 길을 헤매는   일행들이 혹시...불길한 생각을 하면서 10분을 더 올라 가니 일행들이 호각소리 듣고 내려왔다 하니 얼마나 반가운가...정말로 백두산 산신령이 우리 일행을 도와줘 무사히 용문봉을 내려왔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인원 파악을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백두산 이끼가 푹신푹신하다. 밑으로 내려올수록 간간히 안개가 걷히면서 산등성이와 계곡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 바람이 늦추어 지면서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그런데 비에 젖은 내리막길은 미끄럽기 그지없다. 나도 아내도 몇 차례 엉덩방아를 찧었다. 행여 발이라도 삐면 어떻게 하나 조심스럽게 걸어 내려왔다. 저 멀리 관리소 건물이 보인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관리소를 지나 너털지대를 지나는 지점에서 등산로를 조금위로 올라서니 말로만 듣던 장백폭포 위용에 아...하는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가지 아쉬움은 카메라 렌즈에 습기가 차 도저히 찍을 수 없어  정말로 아쉬움이 남네요…….그런게 우리는 안전하게 하산했다.


16:50분, 온천에 몸을 담갔다. 그러니까 점심도 굶은 채 8시간의 산행을 하였던 것이다. 따듯한 물에 들어가니 정말 이제는 살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H가 이때 기억에 남는 말을 했다. 김진명의 소설에 보면 백두산이 울기 시작하면 일주일을 운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오늘 백두의 울음을 듣고 온 것이다. 백두산의 울부짖음을 듣고 온 것이다. 백두의 꾸짖음을 듣고 온 것이다.   온천을 하면서 한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돌아가서 재아무리 오늘 일을 이야기 한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정말 내 자신도 처음 그런 산행을 해보았고, 아마 우리 회원들 모두가 두고두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리고 산을 겁을 내서도 안 되지만, 결코 쉽사리 여겨서도 안 된다는 점을 새삼 느꼈다. 큰 산일 수록 준비를 많이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몇 마디 추가하자.

나중에 들은 이야기 인데 그날 약5000명 정도가 왔었는데 모두 입산금지 당했다 한다. 우리는 과연 행운인가? 글쎄……. 아무튼 중국 당국은 우리에 대하여 과연 어느 정도 안전대책이 서 있었을까? 가이드끼리의 통신수단, 만약 조난을 당했을 때 관리소와의 연락수단은 무엇이었을까? 자칫 내 목숨이, 나의 존재가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한갓 지나가는 외국인의 한사람, 아니 그냥 입장권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